기러기 아빠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나는 '역 기러기' 아빠다.
아아들과 와이프는 한국에 있고 나는 여기 미국에 일하러 온것이다. 다행히도 와이프도 일을 하고 있어서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나도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보다 월급은 적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 친구들은 내가 미국으로 파견나가서 집 렌트비 주고 차 리스비 주고 월급도 더 많이 받는줄로만 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쪽으로 내가 건너온 이유는 일면 호기심과 도전정신 ? 뭐이런것도 있겠지만 결혼후 그리고 아이가 둘 생기면서 복잡하고 피곤한 가정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희망 ? 도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의 내 생활은 좀 희한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것도 있었지만 오히려 집에 돌아와서 피곤함이 더 했다. 일단 출퇴근이 무조건 왕복 두시간이라는 것도 힘든 것이었고 직장에 일찍 가서 늦게 퇴근한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퇴근해서 아이 아빠 역할, 남편역할, 아들 역할, 사위역할 등등 다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제 미국에 와서 석달 있어보니.. 일하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다. 어차피 전문직이니 한국이든 미국이든 달라질것은 없다. 약간의 영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른점이겠지만 그것외에는 그냥 비슷하다. 다만 일하는 것 외의 시간이 정말 널널하다. 너무 남아서 주체를 못할 정도랄까. 난 좀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서 아침 6시 일어나서 집에 전화를 한번 하고서 토스트와 계란 하나정도로 아침을 해결하고 피트니스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한다. 운동하고 샤워하고 면도하고 직장으로 간다. 9시부터 일을 하는데 좀 바쁘다가도 12시 반이면 또 점심시간이다. 쉬엄쉬엄 천천히 점심을 먹고 2시에 다시 오후 업무를 본다음에 또 5시 반이면 대략 일을 마무리한다. 6시에 칼퇴근해도 되고 나는 브랜치 매너저 이므로 특별한 예약이 없으면 5시 반에 퇴근해도 큰 문제는 없다. 미국이라 그런지 자발적 야근 ? 또는 눈치를 보는 야근 이런것도 없고 수시로 이어지는 이사님 부장님과의 술자리 이런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미국와서 같이 일하는 한국사람들에게 말을 들어보니 다들 일 힘들다고 야단이다. 나는 그냥 고개 끄덕이면서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마구 비웃음이 나온다. 아마 이사람들이 미국에서 일한지 오래 되어서 한국 직장문화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나보다. 이걸 뭐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이정도면 한국에서는거의 공무원이나 초등학교 교사 수준의 업무 부하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것에서 그다지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정치'에 의한 인사이동과 차별대우 이런것이좀 짜증이 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퇴근하고서 집에서 내 맘에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나는 결혼을 해서는 안되는 남자였나보다. 나는 정말 아이 돌보는 것이 죽어도 싫다.
지금도 물론 내 아들 둘이 많이 보고 싶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바로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안아주고 놀아주고 하는것은 눈물나게 기쁜일이지만 그것도 하루 정도 일것이다. 다음날 부터는 다시 한국에서처럼 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아이 돌보기, 집안일 하기, 아들, 사위 노릇하는 것이다. 내가 해야하는 그 다양한 인간적 의무들.. 그것이 싫은 것이다.
어제, 오늘의 내 일과를 다시 돌이켜 보면
어제 2시에 퇴근하고 인턴으로 일하는 한 친구와 유명한 햄버거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로 어차피 어디 갈데도 없어서 햄버거를 한 두시간은 먹은거 같다. 별 이야기를 다하면서 아주 천천히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 난 다음 나는 운동하러 피트니스에 갔다. 운동하러 가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처럼 굳이 빨리 끝내고 어디를 가야할것도 없다. 이것저것 다하고 천천히 한시간 반은 운동을 했나보다. 그리고 다시 뭘할까 고민하다가 이 시내에 구경하러 나갔다. 파킹하고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았다. 뭐 딱히 할것도 없고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아주 천천히 구경했다. 근처 스토어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샐러드와 물 하나 사서 비어 있는 벤치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옆에 강아지 데리고 산책 나온 아줌마와 시덥잖은 얘기도 좀 했다. 간단히 장믈 보고 9시 쯤 집에 가서 한국 예능프로 하나를 보면서 맥주한캔 마셨다.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서 또 역시 아주 천천히 토스트를 해 먹으면서 어제 한국에서 방송된 런닝맨을 낄낄 거리면서 봤다. 짐을 챙겨서 교회에 갔다. 한국 교회이지만 규모가 커서 나를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부르는 사람도 없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으니 편하게 미사를 보고 헌금도 달랑 3불 냈다. 미사를 마치고 차를 돌려서 다시 피트니스 센터로 향했다. 원래 운동은 쉬엄쉬엄했지만 오늘은 주말이니 더욱더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만큼 충분히 땀빼고 스트레칭 했다. 피트니스 센터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 점에 가서 닭가슴살 샐러드를 역시 천천히 먹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돌려서 여기로 왔다. 한국 커피샵이다. 미국이라 커피도 싸다. 아메리카노 2.5불 ㅋㅋ 뭐할까 고민하다가 게임 하나 다운받아서 좀 놀다가 영어 뉴스 두세개 들어보다가 이제 키보드 꺼내서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
뭐든지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은 것만 빼면 현재 내 생활에 큰 불만족은 없다. 돈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면 큰 문제는 없을거 같다. 골프 안치고 외식 줄이면 그만이다. 할수만 있다면 아이들을 한달에 한번 정도 봤으면 좋겠다.
나는 참 이기적이다.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을 나의 이런 내면의 특징을 어떻게 바꿀수도 없지 않은가.
올해 안에 나도 결정을 해야 한다. 와이프와 아이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인것인가 아니면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은 아마도 내 인생 전체에서 2012년 지금부터 올해 말까지가 마지막일 것이다. 솔직히 외롭고 퇴근하고서는 말할사람도 없어서 좀 고독하다고 느낄때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바로 그 '고즈넉함'이 아닌가. 여기서 새로 만난 직장 사람들도 생겼지만 그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사생활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또다른 인간 관계가 싫은 것이다.
그냥 내 직장에서 이정도 월급만 받고 스튜디오 하나, 중고차 하나 건사하면서 그냥 이렇게 계속 사는 건 어떤가 생각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은 대충, 적당히 하는것은 절대 아니다. 나에게 내 일은 나의 존재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존재이므로 최대한 열심히 일한다.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한다. 적어도 직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노는 시간없이 계속 업무를 만들어내서라도 일을 한다.
남편도 아니고 아들도 아니고 형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사위도 아니고 교회 임원도 아니고 동창회 임원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모습은 그야말로 '안식년'같다. 아마 이렇게 두어달 더 지나면 아이들과 와이프가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날까 ? 그떄가 되어서 아이들과 와이프를 다시 만나게 되면 다시 지금이 그리워지겠지. ㅋ 사람 마음이 참 갈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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